2년 차 교사였던 지난 2020년에 사이좋은 디지털 세상 교사 연수를 수강한 적이 있다. 팬데믹으로 인해 비대면 원격 연수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제주에서 근무하고 있는 나로서는 오히려 고마운 기회였다. 당시 초등 저학년군을 대상으로 하는 ‘디지털 공감과 소통’이라는 과정을 이수했다. 앙증맞은 여권을 비롯한 연수 자료가 먼저 바다 건너로 배송되었다. 연수를 들으며 비행기 모양 활동 자료의 창문마다 얼굴 모양의 스티커를 붙였던 기억이 난다. 당시 받은 카드 교구도 아직 잘 가지고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와 학교 현장에서 부대끼는 마지막 아날로그 세대인 교사일 뿐 아니라, 특히 나는 대학원에서 정보교육을 연구하고 있는 교사이기 때문에 이러한 교육에 관한 관심이 평소 크다. 다시 매일 얼굴을 볼 수 있는 교실이 되면, 공문을 놓치지 않고 신청해 우리 아이들과 이 멋진 프로그램을 꼭 직접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벌써 그로부터 4년이 흘렀으니 실현하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사이좋은 디지털 세상 찾아가는 학교 교육은 현임교 일부 학년을 포함한 제주 지역 학교에서도 다수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우리 반에서 이를 진행한 건 의외로 올해가 처음이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아이들에게 얘기했다. “몇 년 전에 선생님도 이 프로그램의 교사 연수를 들어봤거든? 재미있었어. 아마 너희도 그럴 거야”라고. 그리고 수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강사님께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어머나, 여권이 굉장히 업그레이드되었네요!” 하고 말이다. 게다가 우리 아이들은 내가 원격연수에서는 그럴 수 없었던 것과 달리 도장도 쾅쾅 직접 여권에 받을 수 있었다. 엔데믹의 기쁨을 오랜만에 새삼스럽게 느꼈던 하루였다.
우리 반은 5학년 추천 과정인 “디지털 세상의 소중한 비밀”이라는 프로그램을 수강하였다. 때로는 외부 교육을 신청할 때 같은 학년이나 안에서도 어떤 학생들은 이전에 해당 프로그램을 이수한 경험이 있고 어떤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생겨 난감한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지만 사이좋은 디지털 세상은 학년별로 추천 프로그램이 명시되어 있어 이러한 부분에서 걱정할 필요 없이 금년도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 현장 교사로서 요긴했다.
우리 아이들은 학급 특색활동으로 생활 글쓰기를 한다. 사이좋은 디지털 세상 수업을 들은 후에도 물론 소감을 남겼다. 우리 연미는 "프로그램 제목은 '디지털 세상의 소중한 비밀'이었다. 제목만 봐도 비밀이라니 더 궁금해진다"고 썼다. 이러한 프로그램 주제와 어울리게 수업 도입부에 강사가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면 열 수 있다”면서 보여준 ‘비밀의 상자’란 실로 아이들에게 엄청난 흥미와 의지를 불러일으켰다.
우리 아이들은 2차시동안의 수업에 즐겁게, 또 진중하게 참여하면서 무사히 ‘비밀의 상자’를 여는 데 성공하였다. 아이들의 환호성과 함께 열린 상자에는 달콤한 선물과 귀여운 선물이 들어있었다. 이를 지켜보며 디지털 에티켓 수칙 만들기 활동에서 했던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똑같은 간식과 기념품도 이런 작은 장치를 추가하면 아이들에게 훨씬 수업 동기와 참여를 유발하게 할 수 있음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고, 더욱 열심히 수업 연구를 해야겠다는 열정 또한 생겨나기도 하였다.
‘디지털 에티켓 수칙 만들기’ 활동도 단순히 수칙을 만들고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커다란 도화지에 아이들이 자신들의 손바닥을 직접 따라 그리고 그 안에 수칙을 적는다는 독특한 형식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참여하였다. 규범의 내면화를 신나는 활동으로 수행한 것이다. 서로 손바닥을 삐뚤빼뚤하게 따라 그렸다며 장난을 치고, 손 가장자리를 따라 움직이는 연필이 간지럽다며 웃고. 즐거운 배움의 소리로 떠들썩했던 수업 현장을 지켜보는 데 기분이 참 좋았다.
예를 들어 우리 희윤이는 “손바닥을 그리며 에티켓 수칙을 만들었는데, 내가 만든 수칙이라 더 실천하기 편할 것 같다. 여권을 만들었는데 더 실감났다”고 한다. 수업 현장에서 한 어린이는 활동 중 “이렇게 손바닥을 따라 그리니 꼭 어린이집 때가 생각난다”고 해서 순회 지도를 하던 담임교사가 크게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기도 했던 것도 기억난다. 손바닥 따라 그리기가 많은 아이들에게 인상적이었다는 점은 우리 민서의 글에서도 드러난다. "'디지털 에티켓 수칙 만들기' 활동은 종이에 자신의 손을 대고 따라 그리는 것인데 그 손안에 존중, 배려, 공감 등을 적는 것이었다. 나는 그중에서도 공감을 썼는데 글을 다 쓰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보니 재밌었다“고 쓴 민서는 ”사이좋은 디지털 세상 프로그램은 너무 재밌었다. 특히 손바닥 그리기가 가장 재밌었다. 다음에도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면 또 한 번 참여하고 싶다“고 글을 마무리하기도 하였다.
평소에도 진솔하고 깊은 생각을 글에 담아내곤 하는 우리 아은이는 "솔직히 나는 수업이 조금 지루할 줄 알았다. 그런데 수업을 시작하고 여권을 주었다. 여권에 도장 2개를 찍으면 비밀의 상자라는 것을 열 수 있는데, 이러한 활동을 하니 지루하지도 않고 강사 선생님도 재밌으셔서 오히려 아주 재미있었다"며 꼭 동료 교사가 남길 법한 후기를 공책에 남겨 선생님에게 웃음을 주기도 했다. ”나와 친구들은 빠르게 미션을 수행해서 상자를 열 수 있었다. 상자 안에는 그립톡과 젤리. 키링이 들어 있었다. 나는 뿌듯하고, 선생님도 친절하셔서 다음에 또 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또 하고 싶다"며 글을 마무리 한 우리 예슬이처럼 “수업에 오신 선생님이 좋았다”고 쓴 아이들도 여럿 있었다. 이는 담임교사 역시 공감하는 바이다.
우리 반 아이들은 언제나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마음결이 곱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버 공간에서의 갈등이 종종 발생한다. 그런데 이는 모두 방과 후에 생기는 일이고, 해당 사안에 관련된 학생 및 학부모와만 개별적으로 상담을 하므로 학급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디지털 관련 갈등을 인지하고 있는 건 담임교사가 유일하다. 구체적인 사안들은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우리 반에서도 사이버 공간에서의 갈등이 종종 일어나고 당장 며칠 전에도 이와 관련된 중요한 상담과 지도를 했다”며 책임감 있는 자세로 교육에 임할 것을 수업 시작 직전 아이들에게 강조하였다. 우리 학교에 오신 강사님께서는 이런 내 얘기를 귀담아 들으시고는 수업 중간중간 이러한 부분을 짚어주시며 교육에서의 배움을 아이들의 삶과 연결 짓도록 도와주셨다. 담임교사로서 참 감사했다.
5학년쯤 되면 아이들은 사실 이미 다 알고 있다. 학교생활을 하며 무얼 지켜야 하고 무얼 해서는 안 되는지 말이다. 아는 것을 내면화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가의 문제다. 이는 디지털 공간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그래도 선생님과 부모님이 지켜보지 않을 때 EO로는 그 도덕성에 균열이 가곤 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 학교 밖에서 아이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해야 하는 역할은 대체로 담임교사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크고 작은 학교폭력과 관련되는 반복되는 생활지도는 교사로서 때로는 절망과 짜증을 마주하게도 한다. 곰곰이 생각건대, 내가 가르치고 타이른 대로 따르지 않은 채 다툼을 또 만들어왔다는 점에서 뾰족한 마음이 생기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아이들이 저들 스스로 만든 수칙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앞서 얘기했듯 사실 그 수칙이란 무엇도 새롭지 않다. 하지만 자신들이 이미 알고 있는 바를 즐겁게 풀어내 정리한 그 수칙들은, 앞으로 아이들의 마음속에서 올바른 디지털 공간 이용을 위한 길잡이별이 될 것이라 믿는다.
아마 우리 아이들은 앞으로도 가끔 디지털 공간에서의 갈등을 만들어 와서는 부모님의 마음과 담임교사의 머리를 아프게 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이번 프로그램에서의 ‘여권’과 아이들의 손바닥이 수놓인 활동지를 보여주며 우리가 배우고 다짐했던 내용들을 다시금 상기하도록 하고자 한다. 우리 규민이는 약속했다. ”이번 수업을 들으면서 디지털 공간 속에서 하지 말 것과 디지털 예절들을 알아서 앞으로는 그 규칙을 잘 알고, 실천할 것이다"라고 말이다. "사이버 폭력을 잘 몰랐는데 조금 더 잘 알게 되었고, 이제부터 속상하거나 우울한 친구들이 있을 때 공감을 해주고 도와줄 것이다. 그리고 어제 비밀 상자를 열었을 때 키링, 젤리 등이 있어서 기분이 좋았고 여권에 도장을 찍어서 좋았다. 도장을 받으니 뿌듯했다"는 우리 하율이의 다짐도 글쓰기 공책을 살펴보던 담임교사의 마음을 뿌듯하게 했다. 후기에 모두 옮겨적을 수 없지만, 이렇게 아이들 모두가 표현 방식의 능숙하고 서툰 정도는 다를지언정 사이좋은 디지털 세상 프로그램을 통해 의미 있는 배움의 지점에 도달했음이 글쓰기 공책 곳곳에서 드러나 보람찼다.
첨단기술과 건강하게 공존하는 올곧은 디지털 시민이 되기 위한 반짝이는 가치의 씨앗을 서울부터 제주까지 심어주고 있는 사이좋은 디지털 세상 찾아가는 학교교육이 앞으로도 전국의 교육현장에서 빛나길 바란다.